투영스 2007. 5. 4. 14:40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風葬)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황동규(黃東奎 1038- ) 시인. 교수.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와 동대학원 졸업. <현대문학>에 “즐거운 편지”등이 추천되어 등단. 문명적 소재를 취하면서도 새로운 서정의 세계를 구축하여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높이고 있음. 시집에 <어떤 개인 날>, <비가(悲歌)>,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풍장(風葬)> 등이 있으며 평론집으로 <사랑의 뿌리>, <김수영의 문학> 등이 있음

 

풍장(風葬)

시체를 한데에 버려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葬事法).

폭장(曝葬)·공장(空葬)이라고도 한다. 풍장 중에서도 나무 꼭대기나 나뭇가지 사이에 두는 수장(樹葬)·수상장(樹上葬), 시렁 같은 것 위에 올려놓는 것을 대상장(臺上葬), 동굴 안에 두는 것을 동굴장, 절벽 끝에 놓아두는 애장(崖葬)이라 한다. 이러한 장법은 북아시아의 고(古)아시아족, 고지(高地) 아시아, 동남아시아, 멜라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의 여러 종족들의 문화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