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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 도종환

투영스 2011. 5. 6. 15:14

가구


                            도종환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있다 장롱이 그러듯이

오래 묵은 습관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있는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 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 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